여기는 거룩한 곳, 어서 엎드리라 ④ 터키이스탄불의 '에윱 술탄 모스크' 즉위한 새 '술탄'에 '오스만의 검' 수여의식 에윱은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과 함께 이슬람의 중요한 순례지로, 터키 전역에서 수많은 참배객들이 찾아온다. 에윱 술탄 모스크의 전경. 콘스탄티노플, 그러니까 오늘의 이스탄불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터키에 의해 정복당하던 날, 오스만 터키는 이스탄불의 서쪽을 공략했다. 서쪽 육지에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세워진 성벽은 ‘테오도시우스 성벽’으로 불리는데 마르마라 해에서 케르코포르타까지 이어지고 거기서부터 골든 혼 해협까지 연결돼 있다. 내측 성벽의 높이는 평균 11m의 많은 탑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지금 남아있는 탑은 56개이며 사각형 반달형 육각형 등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성벽은 모두 합쳐서 400여개 이상의 탑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성벽 외측에는 폭이 15∼20m, 깊이 5∼7m인 수로가 있으며, 수로 안쪽에는 제방이 있다. 이러한 테오도시우스 성벽과 그 부근 성벽의 바깥 부분을 에윱 성역이라 일컫는다. 물론 에윱 성역은 건립 당시에는 주위에 민가가 거의 없었으며, 언덕 뒤로 에윱의 성묘와 모스크만이 서 있었다고 한다. 에윱 성역은 그 옛날 마호메트의 안사르, 곧 처음부터 마호메트를 도와준 메디나 주민이었던 기수 아부 에윱의 무덤이 있어 이슬람의 성역이 되었다. 에윱은 마지막 안사르였기 때문에 나이가 많았던 그는 적에게 포위되어 있던중 숨을 거둬 콘스탄티노플 성 밖에 묻혔고, 그로부터 약 8백년이 흐른후 정복자 메흐메드 2세때 에윱의 묘소가 기적적으로 발견되었다. 메흐메드의 종교 고문이 에윱의 묘소를 꿈에서 보았다고도 전해지기 때문이다.아무튼 이 성자의 무덤이 발견되자 메흐메드 2세는 그곳을 성묘로 만들도록 지시하여 정복 5년후인 1458년에 완공되었다. 현재 에윱은 메카와 메디나, 예루살렘에 이어 중요한 이슬람의 순례지다. 이곳에는 묘비 뿐만 아니라 모스크도 있어 에윱 술탄 모스크라 불린다. 그러나 현재 에윱 성역의 건축물은 1798년 셀렘 3세때 다시 지어진 것이다. 역대 술탄들이 즉위할 때마다 이곳에서 ‘오스만의 검’을 받는 의식이 행해졌다. 오스만 터키제국 창시자인 오스만 1세가 쓰던 검을 받는 이 의식은 오스만 터키의 중요의식중 하나이다. 터키 내에서는 최고의 순례지이기 때문에 지금도 전국에서 수많은 참배객이 찾아온다. 터키 여인은 다른 이슬람 국가와는 달리 머리카락을 감추지 않아도 되지만 에윱과 같은 신성한 장소에 올 때는 머리카락을 감싸야 한다. 이슬람 정통교리와는 배치되지만 이슬람권 전역에서 널리 호응을 받던 독특한 종교적 표현이 있었는데, 그 까닭은 분명히 종교적인 갈증을 충족시켜 주고 이슬람 이전의 신앙적 형태와는 연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건축상으로 가장 대표적인 예가 있다면 성묘의 발달이었다. 메흐메드 도와준 아부 에윱 무덤이 있는 곳이슬람 순례지로 명성이슬람에서는 성자에 대한 숭배를 금지하고 있다. 집단으로 모여 기도를 올릴 때 누구에게도 특별한 좌석이 배정되지 않은 것처럼 초기 이슬람에서 매장지를 특별히 장식하는 예는 없었다. 그러나 최초의 변화는 성자의 묘지에 대한 경배로 부터 일어났다. 이러한 성묘는 기본적으로 두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원통형의 탑과 같은 모양을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좀 더 거창한 사각형 혹은 다각형을 이룬 것이다. 이것들은 돔이나 원추형 뚜껑 혹은 피라미드형의 지붕으로 덮여 있다. 때로는 성묘 주위에 다른 건물이 들어서기도 하는데 코니아에 있는 잘랏 앗 딘 루미의 성묘가 그 예이다.중앙돔과 8개의 작은돔…시난의 '소쿨루 사원'과 비슷성묘 내부는 타일로 장식에윱 술탄 모스크는 장방형의 형태를 띠며 중앙에 돔이 있다. 돔 주위에는 8개의 작은 돔들이 있는데, 이것은 그 유명한 건축가 시난이 아잡카프에 지은 소쿨루 사원과 상당히 비슷하다. 이것은 당시 유행하던 바로크 사원과도 상당히 판이하다. 사원 내부는 당시의 필적으로 쓰여진 글들과 명각들로 장식되어 있다. 주로 16세기에 만들어진 청색과 녹색의 타일로 장식된 에윱 안사르의 무덤은 상당히 흥미롭다. 팔각형이며 돔이 있는 사원의 정원과 직면해 있고, 청동으로 양각된 ‘인생의 창문’은 술탄 아흐멧 1세의 후원으로 세워졌다. 비석에는 사원의 첨탑을 만드는 동안 술탄 아흐멧이 이 무덤을 방문했었다고 쓰여 있다. 정원의 가장 뒤쪽 아름다운 플라타나스가 서 있는 곳에는 우아하게 세워진 분수가 있다. 외부 정원의 3면은 12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13개의 돔이 있으며, 돔들 중 내부에 있는 일곱개의 돔으로 형성된 장소는 집회를 하는 곳이다. 플라타나스 주위의 계단 난간 네 코너에는 ‘행운의 우물’이라 불리는 작은 분수가 있다. 에윱 술탄 모스크의 부속건물 중에는 이슬람신학교, 캐러반숙소, 목욕탕과 무료 급식소의 일부가 있었는데, 현재는 목욕탕과 성묘 일부만 남아 있다. 지금도 할례를 받는 소년들, 희망이 없는 환자들, 그리고 스포츠 선수들이 국제적인 경기를 앞두고 있을 때는 이 사원에 와서 기도를 한다. 에윱 성역에는 인근에 묻히기를 원하는 신앙심 깊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무덤들이 있다. 에윱 술탄 모스크의 성묘 내부는 아름다운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특히 청색이 빛나며 이에 대비되는 백색으로 안정감이 든다. 오스만 터키시대에 만들어진 최고의 타일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출구밖 광장에는 수많은 비둘기가 모여든다. 비둘기 모이를 파는 할머니들도 비둘기와 함께 서성거린다. 에윱 성역은 이스탄불의 신시가지와는 달리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집들이 드문드문 보여 도시의 변두리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낯선 순례자들이 많다고 느껴지는 이곳은 단지 이슬람의 유명한 순례지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메흐메드 2세가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이곳에 성묘와 모스크를 만든 것은 새로운 수도, 새로운 체제가 사람들 사이에 정신적으로 확고히 뿌리 내리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메흐메드 2세는 이스탄불에 이슬람성지를 만드는 것이 정복할 당시부터 그의 머리 속에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에윱 술탄 모스크 뒤 언덕에 있는 피에르 로티 카페에서 피어나는 터키 커피향이 골든 혼에서 불어오는 바다 내음에 묻어 에윱 술탄 모스크의 성묘에 적막으로 내려앉는다